스타트업에게 가장 힘든 건 자금조달입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코리아에겐 아닌 것 같습니다. 사이렌오더로 1200억을 조달해서 은행 빚을 전액 갚아버립니다. 회계적으로 보면 선수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해버린 것입니다.
1. 스타벅스코리아(이하 ‘스벅’)는 2019년 말 현재 차입금이 없습니다.
2019년(아직 2020년 감사보고서 공시 전입니다) 스벅 매출이 1조 8천억이고 비용이 1조 6천억 정도입니다. 이 정도 규모 회사가 차입금이 없다는 건 정말 놀랍습니다. 차입금 없이 운영된다는 건 2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회사 자체가 돈을 잘 벌거나, 은행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스벅은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됩니다.
2. 처음부터 스벅이 차입금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스벅에 차입금이 생긴 건 카페베네 때문입니다. 2008년에 카페베네가 처음 등장하고 3년 만인 2011년에 연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면서 스타벅스를 제치고 국내 커피전문점 1위가 됩니다. 이때 매장수가 카페베네는 630개, 스벅이 350개 정도.
그래서 스벅이 1위 탈환을 위해 목표를 세웁니다. 5년 내로 매출 2배, 매장수 2배. 하지만 당장 매장을 늘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규모 차입을 합니다. 차입금이 2011년도에 240억으로 시작해서 2015년도에 950억까지 갔다가 17년도에 차입금을 다 갚아버립니다.
3. 고객은 스벅에게 커피도 사 먹기 전에 돈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스벅이 영업이 잘 된다고 해도 차입금 950억을 다 갚으려면 영업이익만 가지고는 힘들고 다른 곳에서도 돈이 들어와야 합니다. 바로 고객이 커피도 마시기 전에 스벅한테 돈을 주고 있습니다.
2014년에 도입한 ‘사이렌 오더’가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려면 스타벅스 모바일카드에 돈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즉, 고객은 미리 결제를 해야 사이렌 오더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동 충전’까지 해서 돈을 줍니다. 모바일카드 잔액이 설정한 금액보다 낮아지면 등록한 신용카드에서 자동으로 충전해 주는 기능이 바로 자동 충전입니다. 예를 들면 자동 충전금액이 5만 원인데 모바일카드 잔액이 1만 원 밑으로 가면 자동으로 다시 5만 원까지 충전이 됩니다.
즉, 또 스벅한테 4만 원을 주는 겁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스벅에게 미리 돈을 주고 있는 겁니다.
4. 고객에게 받은 선수금이 2019년 말 기준 1200억입니다.
이렇게 고객이 스벅에게 미리 준 돈, 스벅 입장에서는 커피 팔기 전에 먼저 받은 돈, 이를 회계상으론 선수금(먼저 받은 돈)이라고 합니다. 2019년 말 기준 이 선수금 잔액이 1200억입니다. 즉, 고객들이 사이렌 오더 이용하겠다고 모바일카드로 충전하고, 생일이라고 카톡으로 스벅 기프티콘 보내는 돈이 1200억 인 것입니다.
5. 스벅은 은행 차입금을 고객 선수금으로 상환한 것입니다.
스벅의 차입금과 선수금을 동시에 보면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차입금부터 보면 2011년에 카페베네를 잡기 위해 차입을 시작하면서 차입금이 2015년에 최대 950억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 전액 상환했습니다.
이제 선수금을 보겠습니다. 선불식 충전카드는 2009년에 나왔지만 2014년도에 사이렌 오더가 나오면서 선수금 잔액이 급증합니다. 2009년 21억에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여 17년에 690억, 18년에 940억, 19년 말 잔액이 1200억입니다. 즉, 10년 만에 선수금이 60배 증가한 것입니다.
제가 스벅 CFO라면 고객이 1200억이나 주는데 은행에서 이자 내면서 돈 빌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네요. 역시나 스벅은 2017년에 차입금을 다 상환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