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적자가 누적되어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작아지는 상황을 자본잠식이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해, 원래 투자 금액을 까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본잠식은 기업의 재무구조에 대해 큰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경영자, 주주, 잠재투자자, 채권자 모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많은 스타트업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산 vs 비용
자본잠식은 회계의 결과물이므로, 간단한 회계지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지출이 발생했을 때 회계에서는 지출할 때 한 번에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고, 자산으로 먼저 처리하고 지출액을 추후 특정 기간 동안에 나누어 비용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소모품은 지출 즉시 모두 비용으로 처리하겠지만, 거액의 시설장치에 대한 지출은 자산으로 먼저 처리 후 사용기간에 따라 감가상각의 방식으로 몇 년간 나누어 비용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자산으로 처리할지 비용으로 처리할지는 회계기준에 판단의 근거가 있고 그에 맞게 회계 처리해야 합니다. 지출된 금액은 결국 모두 비용으로 처리되게 되는데 언제, 얼마나 비용으로 인식해야 하는지가 회계의 본질이라 하겠습니다.
자본잠식을 피하고자 하는 유인
스타트업의 특성상, 초반의 자본잠식은 필연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잠식을 피하고자 하는 유인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자금조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자금조달은 크게 투자유치를 통한 방법과 차입을 통한 방법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투자 생태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고, 투자자들도 현재의 자본잠식을 감내하면서 미래의 성장성에 베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입, 은행 대출의 경우는 상황이 복잡합니다. 채권자는 미래의 성장성보다는 현재의 재무성과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잠식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발비
이렇듯, 실무적으로는 대출 문제 때문에 자본잠식을 해결하고자 하는 유인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개발비’입니다. 개발비는 상업적인 생산 단계 전에 연구활동으로 지출한 금액을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건비, 재료비, 교육비 등이 포함됩니다. 추후에 수익이 발생하니, 현재 발생하는 지출도 이연하여 수익이 발생할 때 비용으로 대응하여 처리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지출 금액을 자산으로 처리할지, 비용으로 처리할지에 따라 회사의 재무제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회계기준은 개발비를 자산으로 인식하기 위한 요건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개발비가 식별 가능(자산이 분리 가능하거나 계약상, 법적 권리로부터 발생)해야 하고, 제3자의 접근을 제한하여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미래의 경제적효익이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야 하며, 지출 금액을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하나의 요건이 모두 까다롭지만, 특히 경제적효익의 유입 가능성 부분이 스타트업에게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개발 활동으로 매출 증대나 원가절감이 발생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시장 지배력 등이 미흡한 스타트업이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타트업의 재무제표에서 개발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회사의 어려운 상황과 회계지식이 부족한 세무대리인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결정적으로 회계기준과 상관없이 재무제표를 작성해도 뭐라고 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재무제표로 대출 심사를 진행하게 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될 것이며, 혹여나 운 좋게 넘어가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는 분식회계를 하고 있는 것이며, 아직 회사의 재무제표를 제3자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다가올 회계감사나 실사 때에는 개발비의 자산성을 입증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며, 이렇게 누적된 개발비가 한 번에 정리되게 되면 재무제표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재무성과도 좋지 않고, 자금 상황도 어려운 스타트업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만, 개발비로 자산 처리하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언젠가 비용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