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게 RCPS는 운명입니다. 루이비통, YG, 토스 사례로 이해하시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토스의 ‘R 삭제’는 인상적입니다.

1. 루이비통, YG에 800억 투자

2011년 상장한 YG는 2012년에 싸이 강남스타일이 터지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2014년 루이비통은 YG에게 800억을 투자합니다. 200억은 양현석 개인보유 지분매입(일명, 구주매입)으로, 600 억은 RCPS(상환전환우선주)로. 돌이켜보면 루이비통에게 투자 받을 때가 YG가 제일 잘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2. RCPS = R+C+PS = 상환권+전환권+우선주

영어로는 RCPS, 한글로는 상환전환우선주. 단어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RCPS는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의 약자입니다. Redeemable은 돈을 갚다, Convertible은 바꾸다, Preferred Stock은 우선주식. 즉, 상환전환우선주는 상환(Redeemable), 전환(Convertible), 우선주(Preferred Stock) 이 3 가지 단어의 조합입니다.

1) 상환권(R). 투자금액에 대해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내 돈 갚아’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2) 전환권(C).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입니다.

3) 우선주(Preferred Stock). 보통주보다 배당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는 주식입니다.

정리하면 상환전환우선주는 상환권, “야, 내 돈 갚아”라고 할 수도 있고, 전환권, “야, 이거 보통주로 바꿔줘”라고도 할 수 있는 보통주보다 배당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는 주식입니다.

3. 버닝썬이 터지자 상환권(R)을 행사한 루이비통

루이비통이 YG에 투자한 RCPS 조건은 이렇습니다. 첫째, 상환권. 만기 5 년 뒤인 2019 년 말에 루이비통은 YG에게 투자금액 6 백억을 갚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전환권. 우선주 1개당 보통주 1개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초 버닝썬이 터집니다. 이후 승리 성접대 혐의, 비아이의 마약수사 무마 의혹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2019년 9월에 YG 주가가 2만 원 초반까지 떨어집니다.

앞서 루이비통에겐 옵션이 2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6백억을 갚으라고 할까 아니면 보통주로 바꿀까. 우선주 매입단가가 44,000원인데 행사시점 주가가 20,000원 초반이었습니다. 당연히 루이비통은 전환권과 상환권 중에서 상환권을 행사하여 원금에 약간의 이자(연 2%) 받고 YG를 손절합니다.

4. RCPS는 자본인가 부채인가. 금감원과 토스

RCPS의 상환권(R) 때문에 곤욕을 치른 회사가 또 있습니다. 바로 토스입니다. 토스는 인터넷은행과 증권업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해당 업종은 금융당국의 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인가 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자본안정성’입니다. 금감원은 토스의 자본금 대다수가 안정적 자본이 아닌 부채라며 금융업을 하기에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인가를 안해줍니다.

재무제표를 보니 2018년말 기준 토스 자본금의 75%가 RCPS였습니다. 쉽게 말해 금감원은 RCPS는 상환권(R)이 있기 때문에 투자자가 상환 요청을 하면 원금을 돌려줘야 하므로 실질적인 자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금감원은 RCPS를 자본이 아니라 부채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5. 회계기준 하라는대로 한 토스

RCPS는 분명히 주식입니다. 상환전환우선’주식’. 즉, 형식은 자본입니다. 하지만, 루이비통의 경우처럼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해서 돈을 갚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실질로 보면 부채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질을 중요시하는 K-IFRS(국제회계기준)는 RCPS를 부채로 분류하고, 형식을 중요시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은 자본으로 분류합니다.

토스는 비상장사이므로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받습니다. 따라서, 재무제표에 RCPS를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분류하였습니다. 하지만, 금감원은 회계기준과 관계없이 RCPS는 실질이 자본이 아니라 부채라는 이유로 인가를 안 해 주었던 것입니다.

6. R을 없애다. RCPS – R = CPS

토스는 임시주총을 열고 주주들을 설득해서 R을 없애버립니다. RCPS에서 R(상환권)을 없애고 CPS로 바꿔버립니다. 즉, 상환전환우선주를 전환우선주로 바꾼 것입니다. 상환권이 없어졌으니 더 이상 투자자들이 토스에게 돈 갚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금감원이 지적한 자본안정성 문제가 해결된 것이죠. 그래서 토스는 2019년 말에 겨우 인터넷뱅킹 인가를 받고 지금 ‘토스뱅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