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떠오르는 빅데이터, 블록체인, NFT, 사물인터넷, SaaS 등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토대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시켜가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습니다. 자체 연구개발(R&D)부서를 설립하고 지속적인 인적/물적 투자에 집중하고 있죠. 이러한 노력은 타사와 차별화된 독자적 기술을 보유하여 시장에서 선도적 우위를 점하기 위함일 겁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러한 연구기술 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세액공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국가지원금 선정 시 연구개발 실적을 우수 기업의 주요 지표로 삼고 있죠. 따라서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에 맞춰 연구원들의 인건비 등 R&D와 관련된 금액을 회사가 보유한 자산(무형자산)으로 보아 ‘개발비’ 항목으로 회계 처리하는 스타트업이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비는 회계감사나 재무실사에서 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발생합니다. 단순히 스타트업 뿐 아니라 IPO에 성공한, 규모 있고 시장에서 널리 인정받는 회사들 역시 개발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1. 최근 IPO 성공 회사의 개발비 현황은?
한국거래소 공시 채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IPO 상장(코넥스 제외)에 성공한 소프트웨어 공급업 회사는 총 22곳입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크래프톤도 여기 속해 있죠. IPO 소프트웨어 상장사 22곳의 지정감사를 받고 공시된 재무제표를 살펴본 결과 총 18개 회사의 재무제표에 개발비가 0원이고, 나머지 2개 회사는 개발비 비중이 총자산 대비 약 1% 수준으로 거의 없다시피했습니다.
IPO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감사법인(이른바 ‘지정감사인’)으로부터 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 의견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일반적인 감사 수준 대비 상당히 높고 까다로운 수준으로 감사가 진행됩니다. 상장을 하면 회사의 회계정보를 이용하는 투자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므로, 잘못된 재무 수치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죠.
IPO에 성공한 회사라면 상당한 수준의 소프트웨어 개발 활동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실제 시장에서도 성공적인 실적을 낳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 넘는 회사의 지정감사 후 재무제표에 개발비가 없는 점은 회계기준에서 개발비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알려주는 하나의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2. 회계기준에서 규정하는 개발비 요건은?
상장을 위해서는 K-IFRS로 전환된 재무제표를 준비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발비에 대해 K-IFRS와 일반적으로 스타트업들이 사용하는 K-GAAP 간 중요한 내용 차이는 없습니다.
먼저, 연구개발 프로젝트 과정을 연구단계와 개발단계로 구분해야 합니다. 이때 회계기준서에서는 구분을 위한 각 활동의 예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개발활동은 연구단계보다 훨씬 더 진전되어 있는 상태이고 활동의 대상이 구체화되어 있는 상태여서, 해당 활동으로 기업이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개발활동을 구분했다면 그 다음 단계로는 아래의 6가지 항목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음을 기업 스스로가 입증해야 합니다.
1) 무형자산을 사용 또는 판매하기 위해 그 자산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술적 실현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
2) 무형자산을 완성해 그것을 사용하거나 판매하려는 기업의 의도가 있는 경우
3) 완성된 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
4) 무형자산이 어떻게 미래경제적효익을 창출할 것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경우. 예를 들면, 무형자산의 산출물, 그 무형자산에 대한 시장의 존재 또는 무형자산이 내부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면 그 유용성을 제시하여야 한다.
5) 무형자산의 개발을 완료하고 그것을 판매 또는 사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ㆍ금전적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
6) 개발단계에서 발생한 무형자산과 관련 지출을 신뢰성 있게 구분하여 측정할 수 있는 경우
3. 감독당국에서 원하는 인증 요건은?
이에 더해서 감독당국이 원하는 수준을 만족하고 있는지 역시 검토가 필요합니다. 만약 회사가 회계기준상 요건을 만족하고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외부감사인에게 객관적인 증빙이나 문서를 통해 이를 입증할 수 없다면 최종적으로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래 ‘감리지적사례’는 감독당국이 회계법인이 개발비와 관련하여 수행한 감사 업무에 대한 리뷰 후 적절치 않았던 절차를 지적한 사례인데요. 이를 통해 당국이 개발비에 대해 원하는 입증 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공회 심사/감리지적사례 KICPA-2020-10
회사는 개발 프로젝트별 투입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시간입력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에 근거하여 자산화할 인건비를 산출할 필요가 있고 인건비를 제외한 기타간접비의 경우 합리적인 배부기준을 설정하여 개발프로젝트에 배부할 수 있도록 관련 내부통제절차를 강화하여야 하며, 개발비 관련 기준서를 숙지하여야 함.
감사인은 개발비의 자산성에 대한 검토 시 시간집계자료 등 회사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징구하고, 개발프로젝트에 대응하는 직접비와 간접경비의 집계방법 및 간접경비 배분기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수행하여야 함.
즉 회사는 내부적으로 연구원들의 프로젝트별 시간입력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충분한 내부통제 절차를 갖추고, 이를 외부감사인에게 입증시켜야 한다는 뜻이죠.
4. 우리 회사도 개발비가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유독 개발비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극도의 깐깐한 요건을 요구하지?’ 그 이유는 현금/토지/건물 등 타 자산과는 다르게 개발비는 별도의 형체가 없고 회사가 내부적으로 만들어 낸 자산이라고 주장하는 개념이므로, 회사의 손익에 미치는 자의적인 부분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위해 학문적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요구하다 보니 일반적인 실무에서 준비하기에 쉽지 않은 수준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죠.
CFO라면 회사의 재무제표상 누적된 개발비가 어느 정도 되는지, 그리고 회계적인 요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고 외부에 이를 입증할 수 있는지 등의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계 부서 뿐 아니라 연구개발 부서와의 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회사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는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외부 회계법인의 검토를 받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검토 끝에 회사의 개발비가 객관적으로 외부로부터 인정받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자산의 비용 전환 효과를 IPO나 Exit 등 회사가 계획하고 있는 경영상 주요 이벤트 전에 분석하고, 필요하다면 손상처리 등의 회계처리를 통해 총자산 내 개발비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관리가 필요합니다.